14회 세계문학상 예심 종료/경제난 속 청년들의 고군분투/외벌이 부부의 문제 다루기도/페미니즘과 동성애 소재 ‘눈길’/‘도깨비’ 영향 판타지물 쇄도/AI 소재로 상상력 발휘도 많아/드라마와 웹툰 ‘흉내내기’ 씁쓸/문학적 깊이 부족해 아쉬움 커14회 세계문학상 예심이 끝났다.

지난해 12월 20일 마감한 결과 전년과 비슷한 223편이 응모됐고, 이 중 7편을 가려내 본심에 넘긴 상태다.

심사위원 7명이 예심통과작들을 정독하는 중이다.

이달 말 최종심에서 수상작을 뽑는다.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소감을 종합해본다.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현실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다양한 소재와 성소수자와 성적 역할의 변화를 다룬 작품, 그리고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미래세계의 상상력들이 특히 도드라졌다고 전했다.

드라마나 웹툰 같은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을 흉내 내려는 경향이 강했고, 다양한 소재를 파고들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꾸려내는 데는 능하지만 문학적으로 차별화해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는 평가다.

세상과 삶을 핍진하게 담아내는 장편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렇듯이 현실을 예민하게 반영한 작품들이 많았다.

청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는지 그들의 우수를 드러내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이밖에도 외벌이 부부의 문제, 입양인들을 다룬 작품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잇단 사고들로 재난에 관한 상상력이 발동한 재난소설들도 눈에 띄었고, 국정원 직원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작품들도 보였다.

민감한 북한 이슈들도 반영됐다.

가상 역사소설로 2050년 통일전쟁을 다룬 소설도 있었고, 철원 민통선 지역에서 수복 이전 북한 지역 출신자들이 분단상황에서 어렵게 살아간 이야기, 동진호 납북사건까지 다양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영향 때문인지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다룬 소설, 남녀역할이 희미해진 미래세계를 다룬 소설에 이르기까지 활달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들도 다수였다.

여기에다 인공지능 출현 이후 호모사피엔스의 위기를 들여다보는 작품들도 대세를 이루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경향은 방송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더 신랄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성공작들을 흉내 내는 포즈’라고 한다.

‘도깨비’나 ‘별에서 온 그대’의 영향으로 보이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판타지도 많았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꿈과 우주까지 확장해서 이야기를 만든 작품들도 여럿 보였다.

역사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도 여전히 많았는데 이전과는 달리 특정 시대의 드라마틱한 사건에서 벗어나 여러 시간대로 나뉜 조선시대 여항(閭巷)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범죄수사물도 여전했다.

이러한 작품들을 읽고 난 심사위원들의 느낌은 대체로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한 심사위원은 서사의 힘, 구성력과 가독성을 기준으로 보았는데 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장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장편을 쓰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장편 공모 자체가 가혹한 면이 있다고 본다.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문학이 다른 경쟁매체들과 차별화되고 독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되는지 의견이 일치했다.

소재가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것이 문학작품이려면 새로운 해석이나 자기만의 관점이 필요하다.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상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확한 단어 사용이 아쉬운 걸 보면 작금 글을 쓰는 세대의 독서 경험이 일천한 것 같다고 걱정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자기 표현을 할 기회가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글쓰기에 접근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드라마나 웹툰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안정된 문장을 바탕으로, 조밀한 사유와 대화 안에서 풍부하게 구사되는 구어들과 지문에 작가 자신이 서술자의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절실하다.

특정 흐름에 편승하기만 해도 대중의 흥미를 끄는 세태에서 어느 선까지 원론을 고집해야 하는지 회의적일 때도 있다는 심사위원의 말이 작금 문학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은 응모작들은 각각 나름의 미덕을 갖춘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끝까지 읽고 나면 무릎을 치게 되는 반전이 뛰어난 작품도 있고, 안정된 문장에 설정 자체가 기발해서 한번 붙들면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본심에 넘겼다.

성소수자 문제를 미래 세계와 결합한 이야기도 있고, 청년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정통 드라마도 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이 영예를 안게 될지 기대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