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고, 경기가 위축된다는 비관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버블 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20년을 거쳐 최근에서야 경기가 회복세로 들어선 일본을 보면 마냥 비관적으로 생각할 건 아닌듯하다.

■ "임금인상 추세 더 강화해야"···가계가 위축되면 기업도 타격"오사카의 한 백화점은 개점 전부터 6000명이 늘어선다고 합니다.그리고 매출이 5% 증가했다는군요. 임금인상 때문일까요? 자 여기까지 말하면, 여러분 이제 아셨죠?"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새해 게이단렌(경제인연합), 경제동우회, 일본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대표와 기업 총수 2000명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이 말인즉슨 올해도 임금을 인상하라는 압력이다.

아베 총리의 말에 덧붙여 경제인연합 사카기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임금 인상폭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재계에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경제인들이 앞장서 임금 인상을 주장한 것은 경제 선순환이 사회를 지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경제에 낀 거품이 빠지면서 경기가 바닥조차 뚫고 주저앉았다.

이어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은행 부실이 누적되면서 기업과 가계가 동시에 무너졌다.

그 결과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비정규직 증가 등의 고용 불안이 발생했다.

저임금 기조와 살인적인 물가가 이어져 실물경제가 무려 20년간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과거와 맞물려 일본 정부와 경제인들의 주장을 쉽게 설명하면 ‘돈이 있어야 소비가 발생하고, 그렇게 발생한 매출로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파는 사람만 있고 사는 이가 없다면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 "골치 아픈 일, 내려놓는다"···사토리세대, 니트족의 등장'잃어버린 20년'을 보고 자란 일본의 사토리 세대(득도한 세대)는 계속된 경기 침체에 꿈을 접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이들은 극도로 현실주의적 양상을 보이게 된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 교수는 "돈이 없으면 합리적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사토리 세대의 특징을 살펴보면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들은 목돈이 드는 여가나 문화생활 등에 관심이 없으며, 자기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지만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크지 않아 동기 부여가 어렵다.

이러한 결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타‘ 생활을 하는가 하면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이 되길 자처한다.

또 이들은 연애욕마저 희박해 이성 교제는 물론이고 남녀 관계가 전무한 34세 이하 독신자가 약 40%에 이른다.

이들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집하는 건 ‘경제적인 문제’가 큰몫을 한다.

이런 경향은 1987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

일하지만 혼자 생활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들 젊은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뒤늦게 나서 결혼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어도 이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얘기만 되는 것이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에도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증가는 곧바로 인구 감소로 이어져 사회에 2차 충격을 안긴다.

■ "그때 저임금 준 기업·소상공인들 철퇴"···이젠 구직자가 갑이다과거 임금을 동결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한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시민들의 '철퇴'를 맞고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

시민과 정부는 '블랙 기업'(악덕기업) 목록을 만들어 해마다 공표하고, 목록에 들지 않았더라도 일손이 부족해 영업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러 경쟁력이 없어진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이미 도산했거나 위기에 처해있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일손을 구하지 못해 도산한 기업이 지난해 39개소로 나타났다.

이는 관련 조사 이래 최고치다.

경영 악화가 아닌 일손 부족에 따른 결과여서 일본 경제계 안팎에서는 더 큰 문제로 인식된다.

‘고임금을 줄 바에야 혼자 한다‘는 생각은 얼마 가지 못한다.

1인 경영 또는 가족 경영으로 장기간 피로가 누적돼 평일에도 가게 문을 닫는 임시휴업이 잇달아 손님이 있어도 매출을 발생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를 들이면 해결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단기적 방안일 뿐 장기적으로 볼 때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는 본국으로 돈을 보내려는 목적이 커 내수경기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장기고용에 어려움이 뒤따라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일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가운데 경기는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일손 부족이 심해졌다며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세대에 편입하는 오는 2020년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 "일본처럼 되진 말아야"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받는 부담은 크다.

경영상태가 좋지 못한 한계기업이나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이에 따른 반발로 채용을 줄일 수 있다.

다만 한계기업이 구조조정되고, 영세사업장에 대한 정부 지원과 경기 회복세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한편 최저임금을 받고 있던 근로자들의 소득이 높아지면 궁극적으로 소득 주도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다.

우리 정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고 있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금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당장 현 상황을 유지할 순 있겠으나,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지 않고 일본의 실수를 따라간다면 그로 인한 파장은 10년, 20년 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한 이들의 자녀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일본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 결혼을 꺼리는 젊은 세대, 앞으로도 계속될 고령화 문제와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는 노동문화가 구직 단념자를 양산하고, 높은 시급 덕분에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프리타를 늘리고 있다.

여기에 저출산까지 더해지면서 우려했던 부작용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이는 비단 일본 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 최악의 취업난 속 니트족 청년이 30만명에 이르고, 비혼을 선언하며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세대가 증가해 혼인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또 노인 인구가 신생아 수를 앞질러 초고령 사회로 진입해 있다.

일본 사회를 두고 흔히 한국의 미래라고 말한다.

일본 사회가 겪은 문제가 한국에서도 나타나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탓이다.

실제 일본의 경기침체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사회문제는 우리사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뼈아픈 시행착오를 따라가지 말고 이를 교훈 삼아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고 밥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된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