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의 서훈이 56년 만에 박탈됐다.

1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촌 김성수는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았지만, 대법원은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했다"며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상훈법에 따라 취소를 해야 해 국가보훈처 요청에 따라 관련 절차를 밟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이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과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인촌기념회에 따르면 1891년 10월11일 전라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김경중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3살 때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출계(出系·양자로 들어가 그 집의 대를 이음)했다.

본관은 울산이고, 조선 인종 때 존경받은 이름난 유학자인 하서 김인후의 13대손이다.

6세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8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1914년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15년 중앙학교, 17년 경성직뉴㈜를 연이어 인수했다.

이 회사를 토대로 19년 10월 경성방직㈜를 설립했다.

20년 4월 동아일보를 창간했다.

29년 12월 구미 선진국의 교육문물을 시찰하고 1년 9개월 만에 귀국한 뒤 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고, 해방 후인 46년 8월 이를 기초로 고려대를 발족시켰다.

45년 12월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당수)를 맡았다.

51년 5월 피난수도 부산에서 2대 부통령에 피선됐다가 1년 만에 사임하기도 했다.

55년 2월18일 6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당시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장지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 소재 고려대 구내 인촌동산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