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한모(32)씨가 지난 13일 충남 천안의 한 모텔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공개수배로 전환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진 일로, 경찰은 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하고 도주 경로 및 사망 원인을 확인 중에 있다.

유력한 용의자의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일각에서는 경찰의 허술한 초동조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경찰이 용의자를 공개수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한 점이 결과적으로 용의자의 신병확보에 실패한 이유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개수배, "효과적 수사"vs"위험성 다분"17일 경찰 범죄수사규칙 등에 따르면 경찰관서장은 사건수배에 있어서 피의자의 인적사항이 명백히 밝혀져 긴급한 공개수배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공개수배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 검거를 위해 전국의 수사기관에 범인을 추적, 체포, 인도할 것을 요구하는 지명수배와 달리, 공개수배는 범죄사실과 외모, 성명 등을 언론 등에 전면 공개하는 것을 이른다.

이런 공개수배는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용의자를 조기에 체포하고 범죄자의 보폭을 좁혀 2차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취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수사 실무에서 공개수배로 거두는 효과가 적지 않고, 이번 사건의 경우 평창 올림픽과 맞물려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다만 문제는 살인 등 강력사건의 경우 공개수배를 했다가 이번 사건처럼 용의자의 자살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008년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전 야구선수 이모(41)씨, 2010년 한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이모(47)씨, 2013년 순천에서 여대생 납치·강도행각을 벌인 정모(24)씨, 2015년 50대 여성을 강도살인한 최모(63)씨 등 다수의 범죄자들이 언론을 통한 대대적인 공개수배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개수배가 범죄자들을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면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고 혈연·지연·학연 등 인간관계가 유별나게 중시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일단 용의자의 얼굴과 이름이 대중에 공개되면 자포자기식 심리상태에 빠지기 쉽다.

물론 공개수배를 통해 범죄자의 자수를 유도하거나 또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측면도 크다.

시민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자가 심리적으로 극단에 몰리면서 스스로의 목숨뿐만 아니라 더 큰 피해를 부르는 방화나 살인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한 데다, 형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하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15년 부산에서는 장물판매 혐의를 받는 20대 절도범이 수갑을 풀고 달아났다가 공개수배된 이후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해 숨지면서 공개수배의 적절성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즉 전국에 거미줄같이 펼쳐진 폐쇄회로(CC)TV 분석과 과학수사 등으로 수사력을 집중, 사건 초기에 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수사란 얘기다.

◆"경찰이 상황 자초, 초동조치 적절했다면…"이번 사건의 경우 이런 지적들이 제기되는 것은 공개수배에 앞서 경찰이 한씨의 신병을 확보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데다 지역 언론들과의 합을 맞추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오전 10시45분쯤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이날 오후 1시쯤 해당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해 내·외부를 살핀 뒤 관리자인 한씨와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피해자의 행방을 묻는 경찰의 질문에 태연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단순 실종에만 무게를 둔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 면전에서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린 셈인데, 한씨는 경찰이 찾은 당일 밤 비행기로 제주도를 빠져나갔다.

경찰은 이후 한씨가 피해자의 렌트카를 타고 이동한 점과 진술의 앞뒤가 맞지 않는 점, 지난해 11월 같은 게스트 하우스 투숙객을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던 점 등을 뒤늦게 파악한 뒤에야 추적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또 이런 형태의 살인 사건의 경우 경찰이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하면서 용의자에 대한 수사망을 좁히는 것이 기본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용의자가 특정됐지만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광역 사건의 경우 용의자의 극단적인 선택과 도주에 대비하고, 용의자가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언론에 엠바고(보도 유예)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시신이 발견된 11일 오후부터 유력 언론들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과 함께 경찰이 게스트하우스 관리자를 용의자로 특정해 추적 중이라는 수사 상황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20대 여성의 나홀로 여행, 게스트하우스 음주 문제 등 사건 본류 이외의 곁가지들이 계속해 불거지면서 관련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숨진 피해자에 대해 죗값을 치를 사람은 사라져버렸고, 용의자의 자살로 수사가 급속히 마무리되면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 형국이 됐다는 평가다.

공개수배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경찰의 기민하지 못했던 초동수사, 유력 용의자의 뒤늦은 특정, 언론을 통해 알려진 수사상황 등 ‘삼박자’가 모여 용의자의 자살로 귀결된 것이란 지적이다.

경찰 스스로가 ‘양날의 검’인 공개수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한 탓에 파국을 맞은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