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지혜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 8일 2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KBS2 수목드라마 ‘흑기사’에 출연, ‘드디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기리에 종영된 ‘흑기사’에서 샤론을 열연한 서지혜는 지난 13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바쁜 스케줄로 피곤할 텐데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서지혜는 새침하고 도도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그녀는 웃음이 많고 밝고 생기가 넘쳤다.

“홀가분해요. 사극 분량이 있어 촬영 기간이 4개월 정도로 길었는데, 그렇다 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섭섭해요. 덕분에 겨울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어서 기뻤어요.” 서지혜는 극중 수려한 미모와 빼어난 재단, 재봉 실력을 갖춘 샤론양장점의 디자이너이자 주인 샤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과거 남편(김래원)과 그와 사랑에 빠진 몸종 분이(신세경), 두 사람을 죽게 한 벌로 죽지도 않고 평생 늙지도 않은 채 200년 넘게 살아가고 있는 악녀다.

“단순한 악녀가 아니라 매력이 있었어요. 저도 ‘250년을 산 인물이 정말 악만 갖고 있을까. 질투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샤론 캐릭터를 잘 보여주기 위해 스타일에도 신경을 썼고, 연기를 하면서도 올드한 부분을 살리려고 했죠. 그러다 보니 엉뚱한 면도 보이고 그게 시청자들에게 웃음코드가 된 것 같아요. 저도 너무 악한 인물을 연기했더라면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샤론은 불로불사의 존재로 방송 초반 많은 미스터리를 간직했다.

전생에 수호(김래원)와 해라(신세경)를 죽인 죄로 영원한 삶을 사는 벌을 받았고, 겉으로는 평범한 양장점 디자이너였으나, 절대 늙지 않는 아름다운 미모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변신의 귀재였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호기심을 불러왔고, 작품의 핵심 스토리를 이끌었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독특하고 특이해서 ‘이 드라마가 어떻게 나올까’ 너무 궁금했었어요.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한 장르가 아니라 여러 장르를 소화한 느낌이 들어요. 사극, 액션, 시대극에 남장, 노인 분장까지 다양한 모습을 한 드라마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감독님에게 ‘이 캐릭터 정체가 뭐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연구했고 뿌듯함을 느낀 작품이었어요.” 서지혜는 서늘한 냉미녀인 샤론의 외적인 표현과 함께 날카롭지만 허당기 넘치는 모습으로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녀를 그려냈다.

베키 역 장미희와의 티격태격 케미는 물론, 양장점 승구(김설진)와의 절친 케미도 돋보였다.

“장미희 선생님과 너무 재미있게 촬영을 해서 선생님께 ‘연말에 커플상 노려봐요’라고 했다.

그럴 정도로 좋았어요. 장미희 선생님과는 전에 작품을 같이 한 적이 있어서 편안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베키가 샤론을 엄마, 친구, 언니 같은 느낌으로 받아줘서 케미가 잘 살았던 것 같아요. (김)설진 오빠는 연기를 한지 얼마 안 돼서 나한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서로 촬영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그게 쌓이다 보니 호흡이 좋아졌어요. 내가 촬영을 하다가 애드리브를 할 때도 오빠가 잘 받아줬어요. 그러니까 서로 캐릭터도 풍부해지고, 그런 것들이 드라마에 잘 묻어난 것 같아요.” 드라마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다소 답답한 전개와 밋밋해진 남녀 주인공 스토리 등으로 혹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서지혜가 ‘흑기사’의 최대수혜자라는 점은 이견이 없었다.

주인공 커플보다 샤론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평을 받았다.

모든 이야기의 전개가 ‘기승전샤론’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내가 읽었을 때 매력을 느껴야 한다는 거예요. 튀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한 적이 없어요. 작품이 흥행하는 것과 캐릭터가 사랑받는 것, 배우가 작품을 고를 때 한 가지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캐릭터, 내용도 살펴보죠. 물론 사랑해주시면 감사하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요. 기준점은 제가 매력을 느껴야하는 거예요. 그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사랑을 받게 된 거 같아요. 가족, 내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요. 고독조차 즐거워요. 30대 접어들면서 인생을 더 보기 시작했고 즐기려는 여유도 생겼어요. 그런 여유가 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불안함에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했었는데 30대가 되니까 여유로움으로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하니까 연기를 할 때도 편안해졌어요. ‘무조건 잘 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중압감을 느꼈다면 이제는 ‘못하면 어때, 허투루 연기하지 말자’라고 다짐하게 됐죠.” 드라마는 샤론이 수호, 해라 사이를 끝없이 질투하고 베키를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급격한 노화가 진행됐다.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늙어가다 불에 타 소멸하면서, 250년이 넘는 생을 마무리했다.

“처음부터 샤론이 죽는다는 결말을 알고 시작했어요. 샤론이 어떻게 죽느냐에 대해 작가님과 감독님이 많은 고민을 하셨죠. 석고상으로 변해서 무너져 내리게 할지 등 여러 방법을 고민하셨어요.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화려한 외모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온 서지혜지만 대표 캐릭터가 없었던 것이 사실. 2003년 SBS ‘올인’ 단역으로 데뷔, SBS ‘형수님은 열아홉’(2004), KBS2 ‘그녀가 돌아왔다’(2005), MBC ‘신돈’(2005) ‘오버 더 레인보우’(2006) 등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

영화도 신인 여배우 등용문으로 꼽히던 ‘여고괴담’ 시리즈4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빠른 속도로 주인공이 된 서지혜는 2008년 안재욱과 SBS ‘사랑해’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드라마는 방영 내내 저조한 시청률로 외면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김수로’ ‘49일’, ‘별도 달도 따줄게’, ‘귀부인’ 등에 출연했으나 배우로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러다 2014년 SBS ‘펀치’를 시작으로 2016년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거야’, ‘질투의 화신’ 등에서 눈에 띄는 캐릭터와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배우로 다시 상승 곡선을 탄 서지혜는 최근작 ‘흑기사’에서 드디어 제대로 한방을 터뜨렸다.

“밝고 귀여운 역할을 했었다면 ‘펀치’ 이후로는 도시적이고 지적인 느낌을 많이 보여드렸어요. 저와 잘 맞아 떨어진 거 같아요. 사실 20대 때는 연기에 대해 잘 모르고 열정 하나로 덤볐거든요.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넘겨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깊이 있게 들어가고 싶어졌어요. 가장 달라진 부분이죠.” 서지혜는 최근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도 대중의 호감도를 높였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연예계 닮은꼴 레드벨벳 아이린과 함께 출연해 의외의 입담을 보여줬다.

또 tvN ‘인생술집’에서는 절친 신소율과 출연해 숨겨진 가정사를 고백했다.

“최근 몇몇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었어요. 예능 울렁증이 있었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촬영을 했고 다음에 또 나가고 싶어요. 차가운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서인지 예전에는 쉽게 ‘팬이에요~’ 이런 분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능에 나간 후로는 ‘런닝맨 잘 봤어요’ 이런 식으로 말해주시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JTBC ‘아는형님’에 출연해보고 싶어요. 제가 설정을 잘 못해서 자연스러운 게 좋거든요. ‘흑기사’ 김병옥(박철민 역) 선배님에게도 반말을 했으니 ‘아는형님’도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서지혜도 사랑을 이루거나 가정을 꾸릴 꽉 찬 나이에 접어들었다.

벌써 강산이 세 번 훌쩍 변하고도 반이나 더 흘렀다.

서지혜가 꿈꾸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결혼을 생각하고는 있죠. 서른 살 때 저는 제가 서른세 살에 결혼을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서른다섯이네요. 이제는 포기했어요. 그냥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거 같아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고 이제는 부모님도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하세요. 이제는 이상형도 따로 없어요. 나를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면 돼요. 연하, 동갑은 남자로 안 보였었는데 지금은 한두 살 연하여도 30대니까요.” ‘흑기사’를 통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 서지혜. 그동안 출연했던 드라마 속 이미지는 그녀가 벗어야할 숙제이기도 했다.

시청자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만큼 숙제를 풀기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누군가의 사랑을 원하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었어요.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연기를 했었죠. 저도 사랑받고 싶어요. 역시나 이번에도 그랬죠. 연기지만 섭섭하더라고요. 김래원이 철벽 방어를 할 때마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흑기사’가 끝나고서는 서로 사랑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졌어요. 저도 샤론을 연기하면서 ‘샤론, 그만 좀 해’라는 마음이었죠. 격정 멜로보다는 알콩달콩 사랑, 행복한 사랑을 연기하고 싶어요.” ‘흑기사’는 서지혜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대중에게 ‘배우’라는 타이틀은 확실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라는 점이 의미 있다.

그녀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욕심 많은 배우다.

매 작품마다 의미를 부여했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제 연기 잘하는 여배우로 손꼽힐 만하다.

“샤론으로 블랙코미디 연기를 해봤어요. 저를 많이 내려놓을 수 있는 코미디 장르에 출연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 제가 막 코믹스럽지는 않지만 엉뚱한 면이 나타날 때도 있거든요.” 데뷔 15년 만에 ‘흑기사’ 샤론을 통해 최고의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된 서지혜. 그녀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onlinenews@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