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잇달아 개최될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상회담 의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군사적 신뢰를 형성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는 북한 비핵화와 더불어 가장 큰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정전협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6.25 전쟁 종전(終戰)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70여년간 이어진 분단체제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베를린구상을 발표하면서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논의가 있을 경우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자 주한미군의 지위에 대한 논란도 재연될 조짐이다.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하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로 가라앉았던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의 근거와 필요성은 정말로 사라질까.◆북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근거없는 이유평화협정은 전쟁을 끝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전당사자 간 정치적 조약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확인한 1919년 베르사유 조약,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체결된 파리 평화협정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60여년 동안 이어진 6.25 전쟁을 완전히 끝내면 주한미군은 철수한다는 인식이 많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요구하면서 ‘외국군대 철수’를 거론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군이 철수할까. 주한미군의 법적 근거는 1954년 11월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조약은 주한미군 주둔 근거를 명시하면서 "당사국 중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고 인정할 경우 언제든지 양국은 협의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외부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원조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북한이 위협을 느낄만한 문구를 찾아볼 수 없는 방어적 성격의 동맹조약이다.

북한이 한국, 미국을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은 북한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며, 평상시에는 중립적인 성격을 띤 동맹군이다.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설령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에 불안을 느낀다 해도 철수를 요구할 근거는 없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체결한 양국 간 조약이다.

조약 체결은 국제법상 인정되는 합법적인 주권 행사이며, 그 결과물인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조약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 정부만 논의할 자격이 있다.

북한은 조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개입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어도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협의해 결정할 문제로 평화체제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따라서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한국이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주한미군 성격 변화 논의는 필요주한미군이 철수할 필요는 없더라도 평화협정 체결이 가시화되면 주한미군의 성격과 주둔 형태 등에 대한 변화는 불가피하다.

수십년 동안 한국의 안보를 지켜온 유엔군사령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엔군사령부는 주한미군과는 법적 근거가 다른 군사조직이다.

유엔군사령부는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군사제재를 가한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 제1511호와 유엔군사령부를 신설한다는 유엔 안보리결의 제1588호에 의해 탄생했다.

주한미군보다 북한에 훨씬 적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북한은 유엔군사령부를 유명무실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휴전 당시에는 유엔 참전 16개국과 한국을 대표해 정전협정에 서명했고, 지금까지도 정전체제를 관리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해체 역시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창설 단계서부터 북한 위협대응에 근거했고 정전협정을 관리했기 때문에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자연스레 존재 의의를 잃고 해체될 수밖에 없다.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한다.

따라서 언뜻 보면 유엔군사령부가 사라지면 주한미군도 존재 의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유엔군사령부가 없다 해도 주한미군의 주둔은 가능하다.

북한 위협 대응을 창설 근거로 삼은 유엔군사령부와 달리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외국 침략으로부터의 방위’가 핵심이다.

특정 국가를 위협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주둔하는 주한미군은 한국의 동맹군으로서 한국에 대한 침략행위가 없는 한 중립적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한국의 동맹군으로서 주한미군의 주둔은 북한에 적대적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정세를 안정시키는 평화 지킴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법적 문제와 별도로 평화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주한미군의 존재는 필수다.

정전체제 관리는 유엔군사령부가 맡았지만 실질적인 도발 억제력은 주한미군이 제공해왔다.

전쟁 억제력이 없는 평화협정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북베트남과 미국은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미군이 남베트남에서 철군하자 남베트남은 2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파리 평화협정에서 미군의 남베트남 주둔을 강제하지 않았고, 미군이 없는 남베트남은 북베트남군의 공격에 반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졌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평양-원산 이남에 집중배치한 병력을 후방으로 이동시키거나 군비 검증 및 통제 등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에 제대로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평화협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충돌 방지 조치에 나서도록 강제하려면 한반도 남쪽에 강력한 전쟁 억제력이 유지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파리 평화협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정세 안정을 위해서도 주한미군의 주둔은 필요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거듭하며 갈등을 빚고 있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통해 영향력 확대에 골몰해 있다.

일본 역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주변국을 상대로 패권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견제하면서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미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수십년 동안 전쟁준비를 해왔던 주한미군은 이같은 역할에 적합한 조직이다.

지난 60여년 동안 주한미군은 북한의 전면전 위협을 억제하면서 동북아 지역의 정세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북한 도발 억제가 유엔군으로서의 임무였다면, 동북아 지역 정세 안정 역할은 한국의 동맹군으로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더라도 한국의 동맹군으로서 그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세 변화에 맞게 조직이나 주둔 규모, 장비 배치, 부대 구조 등이 바뀔 수는 있어도 철수할 법적 근거도 없고 필요성도 없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군사적 억제력은 정전체제에서도 평화체제에서도 유효하다.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증원 전력 전개 역량 유지도 이같은 필요성의 연장선상에 있다.

비핵화 문제가 잘 해결된다면 남북 관계는 교류 협력이 활발해지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서 평화공존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 지난 60여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온 냉전 구조를 깨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시기다.

상호 신뢰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은 갈등이나 충돌도 한반도 평화를 뒤흔들 수 있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가 필요하다.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민족끼리 남북 관계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듣기에는 참 좋은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한 주장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쓰기 마련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