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결론 나기도 전에 경협 시동은 섣불러외교가에는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최고 지도자 간 만남인 만큼 수십 차례 사전 회담에서 갈등 사안을 모두 해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해결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해결된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하기도 한다.

의제에서 아예 제외해버리는 방식이 자주 활용된다.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도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북·미 정보당국 간 비밀접촉이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북은 사전접촉의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두 차례 방북 이후에도 폼페이오 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에 긍정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도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향후 개혁·개방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에 착수했다.

양측 간 입장이 이미 수렴됐을 가능성을 방증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핵화 논의 과정을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북한 비핵화와 남북통일이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다.

얼마 전 중국에서 만난 한 지인은 "강원도 설악산에서 금강산을 거쳐 원산 명사십리로 이어지는 관광코스가 뜰 것"이라며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단둥 지역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경기도 파주 지역 땅값이 치솟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정부와 여당은 남북 산림협력, 철도연결을 거론하고 있다.

북한 광물 개발이나 전력 사업 등 경협 구상안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심지어 군복무기간이 단축되거나, 징병제가 폐지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군복무기간 단축, 모병제 실시에 대한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합의 선언만큼 그 이후의 실질적인 비핵화 작업도 더욱 중요하다.

핵 동결과 신고, 사찰과 폐기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핵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리비아도 22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북한은 거의 완성 단계의 핵을 갖고 있고, 숫자도 리비아보다 더 많다.

그 과정의 어려움을 지금으로써는 속단하기 쉽지 않다.

과거처럼 핵 폐기 마지막 단계에서 파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통상적인 정상회담과는 성격이 다르다.

최고지도자 간에 이미 ‘비핵화 합의’라는 목표를 정하고 실무회담이 시작됐다.

사전접촉이 있었지만, 불안한 많은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세부적인 것을 해결하지 않고 봉인한 채로 상징적인 것만 해결하고 넘어가는 식이 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비핵화 선언 이후 이행 과정 곳곳이 지뢰밭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장밋빛 환상은 금물이다.

최근 중국을 찾은 한 청와대 고위인사는 현 국면을 아이가 갓 태어나서 처음으로 돌 지나 걸음마를 뗀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걷는 상황이 너무 위태롭다.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문자 그대로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남북 경제협력과 인적교류는 비핵화가 조건이다.

비핵화 담판 결론도 나기 전에 경협부터 시동을 거는 것은 섣부르다.

정부는 잔치 분위기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좀 더 냉정하게 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다.

16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빌미로 드러낸 북한의 ‘몽니’는 우리가 왜 냉정해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