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쌍중단 사실상 재확인/“北 양보에 美 강경함 보여선 안돼”/ 비핵화 압박 대신 韓·美 조치 강조중국이 17일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연기와 관련해 "북한의 자발적인 조치를 인정하고, 미국은 평화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대미 압박 수위를 높였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비핵화 조건을 강화하는 대신 북측 조치에 상응하는 한·미 측의 조치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프랑스를 공식 방문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파리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오래됐고 복잡한 한반도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쪽은 마주 보며 다가와야지 등을 보이고 반대방향으로 질주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현재 한반도 정세 완화는 어렵게 얻은 것"이며 "북한의 자발적인 조치는 충분히 인정해야 하고 각국, 특히 미국은 현재의 평화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측이 융통성을 보일 때 다른 한 측이 강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며 "이런 현상이 재연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왕이 국무위원의 이 같은 언급은 중국의 기존 입장인 쌍중단(雙中斷:북핵·미사일 도발 중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사실상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북한이 풍계리 핵 시설 동결을 결정한 만큼 한·미도 연합 군사훈련을 재조정하는 등 양측이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루캉(陸慷) 외교부 대변인이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미 양측이 상호 선의와 진정성을 보이고, 남북은 상대방의 합리적인 우려를 존중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거부가 북한의 비핵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미가 그 대가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북의 양보에 대한 한·미의 선의의 대응이 있다면 현재의 고비는 봉합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정지융(鄭繼永) 푸단(復旦)대 한반도 연구센터 주임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으로선 핵 실험장 폐쇄가 최대한의 양보"라며 "큰 양보를 하고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된 뒤에도 미국과 한국이 극단적인 압박을 계속하자 북한이 이용당했다고 여기며 더는 양보가 없다고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뤼차오(呂超)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남북정상회담 후 모두 그동안 한반도 정세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었다"며 "북핵 위기 해결은 복잡한 절차라서 어느 한쪽이 양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