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사진 왼쪽)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23일 오전 8시 15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119 구급대에 의해 순천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라고 밝혔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박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씨의 딸 영옥씨와 결혼했다.

1961년 5·16 쿠데타를 기획 및 감행했고 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을 차려 초대 부장을 지내며 35세 나이에 권력의 중심부에 섰다.

이후 2004년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43년간 정치활동을 했다.

김 전 총리는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 당선됐다.

이후7·8·9·10·13·14·15·16대를 거쳐 9선 국회의원을 지내 역대 최다선 의원을 역임했다.

1993년에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 총재 자리에 올랐다.

1971~1975년 제11대(유신정권)과 31대(DJ 정권)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三金)'으로 불린다.

한국 근대 정치사의 주축이었으며 근대 정치사를 이끌었다 평가되는 '‘삼김(三金) 시대’가 이번 김 전 총리의 별세로 마무리됐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에 이어 23일 김종필 전 총리가 별세했기 때문이다.

1987년 개헌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정권 저항했던 야당 정치인이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다.

김 전 총리는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데 이어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민주화 바람 앞에서 박정희 정권 2인자 수식어로 집권에 어려움을 느꼈다.

결국 노태우 정부 말인 1990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과 '3 당 합당'을 이뤄 민주자유당의 보수정권연합을 이뤘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에 성공했다.

김 전 총리는 1997년 대선에서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DJP(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합을 성사시켰다.

선거 막바지 김대중 전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더불어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이후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며 국무총리에 재임했다.

그러나 2001년 내각제 개헌 파동과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 파기로 인해 DJ와 결별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10선 도전에 실패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현대 아산병원에 차려지며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발인은 27일 수요일. 뉴스팀 new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