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는 “사나이는 관 뚜껑 덮고서야 일이 비로소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원래 유배생활을 하며 실의에 빠진 친구의 아들에게 떨쳐 일어나 권토중래하라고 격려하는 의미로 썼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을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적 인물’인 김종필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으며 두보의 말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죽은 즉시 올바른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있는 자들의 평가 태도와 의지 및 죽은 자와의 관계 등이 변수가 된다.

물론 지금 당장 김종필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평가에만 맡기지 말고 현재 시점에서도 객관적 평가를 진행해야 논란을 해소하고 후일 평가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김종필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4·19혁명을 뒤엎은 5·16군사 쿠데타의 주축 인물이었다.

5·16쿠데타는 법적·역사적 평가가 이미 끝났다.

그것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 주축세력이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탈취한 명백한 반헙법적 쿠데타였다.

김종필은 쿠데타 중심인물이었으며 지금의 국정원의 효시가 되는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인물이다.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는 악랄한 도구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희생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권의 도덕적·법적 정통성 결여를 은폐하고자 경제개발을 계획했다.

외국의 차관에 의존하던 당시에는 경제개발을 하려고 해도 추진 자금이 없었다.

이 문제를 김종필 주도로 진행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해결했다.

한일기본조약은 박정희 정권의 필요에 따라 국민적 공감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졸속으로 밀실 야합 형태로 진행하였다.

일제가 자행한 각종 만행의 진상 조사와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으며 피해액을 실질적으로 평가하여 협상을 진행하지 않아서 아직도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고 있고 총 6억 달러(무상공여 3억 달러, 재정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도 우리의 피해 규모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았다.

또한 청구권 자금 중 개인 피해자에게 지급했던 돈은 전체의 1/10도 되지 않는 미미한 금액이었으며 나머지는 정권이 임의대로 집행하였다.

한마디로 한일기본조약은 문제투성이였으며 그 중심에는 김종필이 있었다.

김종필은 ’3당 합당'과 'DJP 연합' 등을 통해 민주정부 수립에 일정 정도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면에는 그의 정치 수명 연장과 야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신과 지지세력의 이익에 기반해서 정치적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이런 김종필의 정치적 행위를 마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인 듯 미화하거나 과대포장해서는 안 된다.

김종필은 5·16 쿠데타 이후 수많은 역사적 죄악을 저질렀고 철저히 양지를 지향하며 살다간 사람으로서 훈장을 받을 자격이 전무한 사람이다.

과거 중국이나 우리 선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은 직필(直筆)과 목숨을 바꿀 정도로 소신이 뚜렷했다.

우리는 이 엄정한 사관의 태도를 역사 기록자에게만 요구하지 말고 국민 모두가 견지해야 한다.

춘추시대에 대표적인 직필 사관으로서 진나라의 동호가 있다.

동호가 사관으로 있던 당시 군주였던 진영공은 나라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서 궁궐을 장식하고 음란무도한 생활만 탐닉한 악덕 군주였다.

최고위 관리였던 조돈은 진영공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수차례 간했으나 진영공은 싫어한 나머지 힘센 장사를 시켜 여러 차례 조돈을 죽이려 하자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얼마 후 조돈의 같은 집안사람인 조천이 진영공을 죽였다.

조돈은 외국으로 달아나다 미처 산을 넘지 못하고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돌아왔다.

이 사건을 두고 사관인 동호는 사초에 “조돈이 그의 군주를 시해했다”고 썼다.

그리고는 이를 조정에서 공표하자 조돈은 동호를 찾아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동호는 “그대는 나라의 최고위 벼슬에 있는 관리로서 망명을 하려고 했다고는 하나 아직 국경을 넘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군주를 시해한 죄인을 벌주지 않았소. 그러니 그대가 시해한 것이 아니고 누가 했단 말이오”라고 비판했다.

이에 조돈이 물러나와 탄식하며 “아, ‘내가 조국을 그리워하다가 오히려 우환을 자초했네’라는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고 말했다.

사실 조정의 전권을 장악한 조돈은 강압을 동원하든 아니면 동호를 죽여서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조작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공자는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다.

역사 기술의 원칙대로 기록하여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돈은 옛날의 훌륭한 관리였다.

사관의 역사 기술의 원칙을 인정해 오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애석하구나, 국경을 넘었더라면 오명을 면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평가했다.

공자는 동호는 훌륭한 사관으로서, 조돈은 훌륭한 관리로서 둘 다 높이 평가했다.

그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평가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이 아닌 보통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그의 가족이나 지인 등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단절적이고도 단기간에만 남아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은 평가의 영향이 광범위하고 중대하므로 보통사람과는 달리 엄정하고도 역사적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적 인물인 김종필에 대한 평가가 갖는 의미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호의 직필과 신상필벌이야말로 가장 유효한 후세교육이며 역사 바로 세우기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