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맞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 검찰, 사무실 직원 가방서 찾아내 / 임 前 차장, 자료 은닉 시도 인정 / 양승태 등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 / 강제수사 진행 순탄치 않을 듯 / ‘상고법원’ 기고문 대필 의혹 관련 / 前서울대 총장 소환… “명의 빌려줘”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직권남용 의혹의 핵심인물인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3월 퇴직하기 전 법원 내부자료를 무더기로 빼돌린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해당 자료 중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행정처 기획조정실 문건이 대거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번 수사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서울대 총장까지 동원됐다는 의혹 수사에도 본격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임 전 차장이 행정처 자료를 별도로 저장한 뒤 감춰 놓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확보해 내용물을 분석하는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검찰은 전날 법원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임 전 차장의 서울 서초동 집과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입수한 USB에는 임 전 차장이 2012년 8월 행정처 기조실장에 발탁됐을 때부터 지난해 3월 행정처 차장을 끝으로 법원을 떠날 때까지 작성하거나 보고받은 기조실 문건이 대거 저장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업무용 컴퓨터에서 USB 존재를 확인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샅샅이 뒤진 끝에 USB를 찾아냈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압수수색을 피할 목적으로 USB를 사무실 직원의 개인 가방 안에 숨겨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의 집요한 추궁에 "백업용 USB를 사무실 직원으로 하여금 보관하게 한 사실이 있다"며 자료은닉 시도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 기조실장 및 차장으로 근무하며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에 사법부의 활약상을 홍보하는 방안에 관한 문건,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들을 회유·압박하는 방안에 관한 문건 등은 모두 임 전 차장의 손끝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의 전직 고위 법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지난달 21일 검찰이 고발인 조사를 시작하며 수사에 착수한 지 꼭 한 달 만이다.

법원의 소극적인 자료 제출 태도로 미뤄 강제수사의 불가피성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 수사가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임 전 차장 이외의 전직 고위 법관들도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쉽게 내줄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실제로 검찰이 함께 청구한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행정처장 겸임) 등의 압수수색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모 전 행정처 기획조정1심의관 등 현직 판사들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영장도 모두 ‘퇴짜’를 맞았다.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권을 침해할 만큼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행정처가 상고법원 신설을 지지하는 언론 기고문까지 대필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전 서울대 총장 A씨를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했다.

A씨는 2015년 4월13일 한 일간지에 ‘대법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 상고법원’이란 기고문을 실었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나는 명의만 빌려줬고 글은 행정처가 썼다"고 시인했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