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아시안게임이 오는 18일부터 9월2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열린다.

18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에는 한국 등 45개국이 출전, 40개 종목에서 기량을 겨루게 된다.

아시안게임은 규모로는 올림픽에 이어 두번째로 큰 종합대회다.

한국은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안게임부터 출전했다.

1회대회인 1951년 인도 뉴델리 대회도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포기했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우리나라와 시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 곳에서 열렸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그런만큼 관심도 뜨거웠고 스타탄생에 열광했다.

아시안게임을 거쳐간 수많은 별 중 팬들 가슴속 깊숙하게 자리잡은 별들을 추려 봤다.

▲ 첫 금메달리스트 최윤칠, 보스턴 마라톤 3위에 오른 세계적 마라토너아시안게임 사상 우리나라 첫 금메달리스트는 1954년 2회 마닐라대회 남자육상 1500m의 최윤칠(1928년 7월 19일생)이다.

최윤칠은 3분56초2라는 아시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마라톤이 주 종목인 최윤칠은 나라를 위해 중장거리에 출전, 큰 선물을 안겼다.

마라토너가 중거리인 1500m에 출전, 1위를 하는 것은 일종의 이변이다.

최윤칠은 금메달 가능성이 보다 높았던 5000에선 아깝게 2위에 그쳤다.

▲ 김성집, 한국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안게임서도 메달 김성집(1919년 1월 13일 ~ 2016년 2월 20일)은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에서 동메달을 획득, 한국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유명하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서 또 동메달을 차지해 2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최초 기록도 남겼다.

김성집은 1954마닐라아시안게임 역도서 금메달을 따내 한국 최초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됐다.

▲ 첫 다관왕은 사이클 이흥복, 3관왕은 역도 원신희 아시안게임 첫 다관왕은 1958년 도쿄아시안게임 사이클 대표 이흥복이다.

남자단체도로, 개인도로에서 모두 우승했다.

첫 3관왕은 1974년 역도 원신희로 인상, 용상, 합계 모두 1위에 올랐다.

역도의 경우 대회때마다 역도 세부종목이 왔다 갔다(합계만으로 메달, 혹은 인상 용상 합계로 분리)했다.

▲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1970년대 스포츠 팬들이라면 '아시아의 마녀'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여자투포환의 백옥자(1951년생)을 일컫는 말로 1970년 방콕,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176cm 90kg이라는 당시로선 아주 보기드문 신체조건을 갖췄다.

백옥자의 딸은 한때 한국여자농구 간판 센터였던 김계령(190cm)이다.

▲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2개대회 연속 2관왕한국남자수영 슈퍼스타는 조오련과 박태환이다.

조오련(1952년 10월5일~2009년 8월 4일, 실제는 1950년생)은 1970방콕아시안게임 남자수영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한 뒤 1974테헤란 대회서도 또 다시 금메달 2개를 차지, 2개 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다.

온 국민의 환호가 쏟아졌고 당연히 카퍼레이드와 청와대 초청이라는 대접을 받았다.

조오련은 영화 친구에서 "거북이와 조오련이 헤엄치면 누가 이길까"라는 대사가 등장할만큼 그 시대의 스타였다.

▲ 인어자매 최윤정 최윤희, 모두 금 5개· 은3개· 동 6개 따내 최윤정(1964년생), 최윤희(1967년생)은 아시아의 '인어자매'로 불리며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자매로 유명하다.

언니 최윤정은 1978방콕대회 여자수영 배영 100, 200m에서 동메달을 건져냈다.

최윤정 윤희 자매는 1982뉴델리 대회에 나란히 출전해 최윤희가 금3(배영 100, 200, 개인혼영 200m) 동1(혼계영 400m)를, 최윤정이 은 3(배영 100, 200, 개인혼영 200m) 동1(혼계영 400m)를 차지했다.

자매가 나란히 1,2위로 들어오는 장면에 온 국민은 열광했다.

1986서울대회엔 최윤희만 참가해 배영 100, 200m에서 금메달, 개인혼영 200m와 혼계영 400m에서 동메달을 가져 왔다.

▲ 축구대표팀 사상 역대 최강 1978방콕 멤버축구는 가장 인기있는 단체 종목이다.

한국은 1954년 2회마닐라대회부터 2014년 17회인천대회까지 16차례 출전해 모두 4차례 우승했다.

1970년, 1978년 공동우승했고 1986년과 2014년엔 단독우승했다.

아시안게임 출전 멤버 중 역대 최강은 1978년 방콕대회라는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시 한국은 조광래 김호곤 차범근 허정무 조영증 황재만 박상인 최종덕 신현호 조병득 이강조 오석재 김강남 김성남 등을 내세워 북한과 공동우승했다.

이들 중 차범근 허정무 조영증 조병득 등이 1986년 32년만에 월드컵 재진출을 일궈낸 핵심으로 뛰었다.

▲ 유일무이 남자육상 100m 우승 서말구, 200m 우승 장재근육상 100, 200m는 단거리로 육상의 꽃으로 불린다.

한국육상 역사상 아시안게임 단거리를 석권한 적은 딱 2번밖에 없다.

1978년 방콕대회 남자 100m서 서말구, 1986서울대회 남자 200m 장재근 뿐이다.

▲ 라면만 먹고 뛰었다, '헝그리 정신' 전설을 남긴 임춘애한국스포츠의 분수령은 1986년이다.

32년만에 월드컵에 다시 나섰고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해가 1986년이다.

1986서울아시안게임은 온 국민이 나서 준비하고 치뤄냈다.

그 까닭에 많은 이야기를 남겼고 여럿 스타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 압권은 여자육상 중거리 임춘애. 당시 성남 성보여상 2년생이던 임춘애(1969년 7월1일)는 비쩍 마른 몸매로 여자육상 800· 1500· 3000m에서 우승, 3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까지 차지했다.

관심이 집중됐고 워낙 마른 몸매에 사람들은 "얼마나 먹지 못했으면~"라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던 중 육상부 지원이 열악해 '간식으로 라면 정도만 먹었다'라는 관계자가 한 말이 "임춘애, 라면만 먹고 뛰었다"로 번역(?)돼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보릿고개에서 막 벗어난 국민들이었기에 흙수저 임춘애를 보고 울고 또 울었고 도움을 주겠다는 이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났다.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의 전형처럼 여겨졌고 그 후 '비교적 잘먹고 살았다'고 해도 믿는이가 없었다.

영화 '넘버 3'를 보면 불사파 두목 송강호가 "그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 금메달 3개를 따버렸어"라며 헝그리 정신을 주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하가 "임춘애입니다"고 바른말했다가 죽을만큼 맞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