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는 한국영화의 '퍼스트 펭귄' 역할을 했다고 치켜세우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박'과 '쪽박'을 사이에 두고 저는 죽다 살아났어요." (퍼스트 펭귄:펭귄 무리가 사냥을 하러 바다에 나갈 때 포식자를 두려워해 모두 주저하지만 용감한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면 모두 뒤를 따른다.

퍼스트 펭귄은 포식자에 먹힐 수도 있다)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원동연(54, 이하 직함생략)은 영화 '신과함께2'가 1000만 명을 막 넘어설 무렵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석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흥행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가 제작한 영화 '신과함께' 1편 '죄와 벌'은 지난해 12월 개봉돼 올초까지 1441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이 들었고, 지난 8월 개봉된 2편 '인과 연'은 1227만명을 끌어모았다.

그는 불과 8개월 사이 2700만 초대박 흥행몰이의 주역이 됐다.

원동연의 첫 1000만 관객 작품은 2011년 9월 개봉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 이하 '광해')다.

국내 유일의 '트리플 천만 영화제작자'란 타이틀 외에도 그는 판타지 영화의 불모지였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신과함께' 시리즈 연타석 홈런에 이어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3, 4편 동시 제작)를 현실화하고 있는 그에게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줄곧 "쑥스럽다"며 고사하다 "후배제작자들을 위해 '프랜차이즈 영화의 의미'를 부여해달라"고 다시 주문한 뒤 결국 '가볍게 차 한잔 하는 자리'로 절충이 됐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8일 충무로에 개인주택을 개조한 그의 영화사 리얼라이즈픽쳐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각종 크고 작은 시상식 등 연말 일정이 폭주하면서 행보가 더 바빠졌다.

연타석 '쌍천만 홈런'의 위력을 실감하는지? 배우들이 주목을 받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저한테 초점이 맞춰져 좀 부담스럽긴 해요. 불러주시고 관심을 갖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신과함께'의 그늘에 조용히 숨고 싶은 심정이죠. 얼마 전에도 외무부 요청으로 해외 강연 요청이 있었는데 몇번 고민하다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해 어쩔수 없이 참석을 했고요. 원동연은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간 한-Asean 차세대 영화인재교육사업 일환으로 진행된 싱가포르 'Fly2018'에 특강 초청자로 참석했다.

'신과함께'가 아시아 전역에서 히트를 기록한 이후 달라진 위상이다.

그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적극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과함께'는 근래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 됐다.

올해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축하를 받고 있는 지금도 솔직히 실감이 안 납니다.

오랜 기획 과정을 거쳐 자신은 있었지만 흥행여부는 저도 내내 불안했어요. 연타석 좌절의 늪에 빠져들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이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신과함께' 직전 개봉된 '대립군'은 불과 83만에 불과했잖아요. 치명적 흥행실패로 한동안 방향을 잃고 헤맸어요. 저야말로 개인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셈인데 마치 죽다 살아난 기분이죠(웃음). 올해 개봉된 '신과 함께2-인과 연'은 1227만 명의 관객으로 올 개봉영화 중 유일한 1000만 영화다.

'안시성'(535만) '독전'(520만) '공작'(497만) 등이 뒤를 이었지만 '신과함께'의 기세에는 한참 못미쳤다.

지난해 12월 개봉돼 1441만 명을 넘긴 '신과함께1-죄와 벌'은 '명량'에 이어 한국영화 흥행사를 통틀어 2위(1위는 '명량')를 기록했다.

-국내 영화 제작자 중 첫 '트리플 천만 관객'의 주인공이 됐다.

감독들 중에도 두 편까지는 있어도 세 편은 없지 않나? 글쎄요, 배우나 감독들과 비교를 하는 게 어색하긴 합니다만, 굳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저한테는 '신과함께'의 히트가 만들어낸 행운이라고 할 수 있죠.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17년 만에야 '광해'(2012년)로 첫 1000만의 문턱을 넘었으니까요. 배우 중에는 송강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와 하정우('암살' '신과함께-죄와 벌' '신과함께-인과 연')가 있고, 윤제균('해운대' '국제시장') 최동훈('도둑들' '암살') 김용화('신과함께1' '신과함께2') 감독이 두 차례 1000만 관객을 모은 주역들이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게 흥행 규모다.

얼마나 벌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나. 1, 2편 극장매출만 대략 2300억 정도로 추산됐어요. 두 편 제작비가 광고마케팅 포함해 430억 들었으니 5배쯤 되네요. 해외판권이나 TV 등 부가 수입은 정산이 돼봐야 알듯하고요. 아마 궁금하신 게 개인적 수입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전 빚(영화 '대립군' 영향)까지 다 털고도 충분히 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못하는 점은 양해해주세요. 원동연은 95년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이후 '싸이렌' '마지막 늑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마린보이' '신과함께' 등 모두 12편을 제작했다.

이중 2012년 '광해'부터 '신과함께'까지 4편의 영화로만 영화발전기금 100억원을 냈다.

개인 제작자가 낸 금액으로 100억원을 넘긴 첫 사례다.

-영화의 흥행은 워낙 다양한 변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제작자 입장에서 흥행비결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남녀노소 모두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보편적인 스토리에 색다른 시각효과를 가미한 게 주효했다고 봅니다.

영화계에서는 관객의 취향과 장르에 따라 '2장짜리'(부부 또는 연인끼리)와 '4장짜리'(4인 가족영화) 티켓으로 분류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번 '신과함께'는 드물게 '6장짜리'란 말이 생겼죠. 부모님 외에 조부모님을 모시고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의미예요. -해외에서 개봉된 나라만 해도 100개국을 넘었다.

무엇보다 아시아 전역에서 히트하지 않았나? 아시아권에서의 흥행은 아무래도 인과응보 또는 효(孝)사상 등 문화적 뿌리가 같은 동양 사상이라고 생각해요. '신과함께'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기도 하고요. 3, 4편까지 포함해 한국 콘텐츠가 아시아권 흡인력을 겨냥할 근거와 목표점을 찾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10억 인구의 북미대륙이 40억 아시아보다 티켓구매력이 높지만, 향후 한국영화츠의 아시아권 잠재력은 엄청날 거라고 믿습니다.

'신과함께' 시리즈는 대만(한국영화 흥행 역대 1위) 홍콩(역대 2위) 싱가포르(역대 3위) 등 아시아권을 포함해 전 세계 120개국에서 개봉됐다.

일본은 연말 또는 내년초 개봉일정이 잡혀있고, 중국만 현재까지 개봉일정이 미뤄진 상태다.

업계에선 해외판권 추가수익이 예상보다 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내 영화계에선 판타지 장르가 성공한 예가 드물지 않나. 도전 자체가 모험일 수도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웬만큼 관객이 들어도 BEP(손익분기점)를 맞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신과함께' 역시 시각효과를 위한 CG 비용만 160억 이상 들었어요. 해외시장을 겨냥하지 않으면 국내 관객만으로는 위험부담이 큰 셈이죠. 소재도 중요해요. '부산행'이 해외에서 먹혀든 건 총이 아닌 주먹으로 좀비를 때려잡는 유일한 주인공(마동석)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영화의 일반적 수익창출은 '극장매출8-해외판권1-부가판권1'의 구조다.

원동연은 '신과함께'로 '극장5-해외3-부가2'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영화계에선 원동연이 '신과함께'를 통해 한국영화의 외연(국내와 해외 모두)을 넓히는 '퍼스트 펭귄'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3, 4편이 제작된다면 국내 프랜차이즈 영화의 첫 이정표가 되는 셈이다.

드라마도 준비한다고 들었다.

첫 영화가 4년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 시나리오 1년-촬영 1년을 포함해 개봉까지 6년이 걸렸어요. 1차 목표가 달성된 지금은 다음 단계가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3, 4편은 김용화 감독이 주축이 돼 이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고, 드라마 역시 국내외 투자자들과 협의 중입니다.

타임테이블에 따라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고 보면 되고, 일단은 둘 다 2021년 방영 및 개봉 목표로 추진중이에요. 원동연이 주호민 작가와 그가 소속된 소속사로부터 '신과함께' 판권(영화/드라마)을 산 시점은 2011년이다.

그가 영화를 히트시킨 뒤 주호민 작가의 웹툰만화도 덩달아 대박을 쳤다.

단행본으로 발간된 '신과함께'는 지난 9월 90만부를 넘겼고, 연말 또는 연초 출판계 초유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오달수와 최일화가 미투 논란에 휘말렸을 때 추가 제작비를 들여 재촬영했다.

지금도 그 결정은 맞다고 보나? 무엇보다 당시 분위기에서는 '미투 쓰나미'에 휩쓸려 영화가 표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쉽긴 해요. 이미 촬영이 끝난 작품인데다, 어떤 법적 판단이 나지 않은 상태였잖아요. 전체 제작비를 고려하면 추가제작비 10억 원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양해를 구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지금도 미안한 마음은 있죠. 원동연은 이 부분에 대해 "특히 오달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와 오달수의 인연은 2003년 영화 '마지막 늑대'다.

오달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 배역을 교체하고 재촬영하는 상황은 고통이었다.

더구나 스스로 인정한 최일화와 달리 오달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이어서 안타까움은 더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던 그는 오달수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자진하차를 결정하자 결국 마음을 굳혔다.

-얼마 전 한국영화계의 별이 떨어졌다.

배우 고(故) 신성일의 타계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뵀는데 '광해'를 참 재미있게 보셨다면서 '아 근데 나도 그 내관역을 잘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셨거든요. 올해 영화제 때도 레드카펫 순서를 기다리던 중 대기실에서 만나게 됐어요. 이번에는 '신과함께'를 잘 봤다며 '젊은 영화제작자들이 우릴 자주 불러줘야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워낙 건강해보이셨는데 불과 한 달 만에 갑작스런 부음소식을 듣고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원동연은 고 신성일의 빈소 영상을 자신의 SNS에 공개하는 등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는 2011년 가을 영화 '광해'의 조내관역으로 캐스팅하려고 신성일을 물망에 올렸다가 (감독 등 스태프와 상의 끝에)잦은 야간촬영과 이동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배우 장광으로 바꿨다.

이 부분에 대해 그는 "당시 75세의 고령 때문이었는데 뒤늦게 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후회 했다"고 말했다.

-영화제작자이면서 KBS1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방송 패널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는 건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인 게 아닌가 싶어요.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면서 많은 분들한테 관심을 받았는데 사실 그 기간 동안 저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방송을 시작할 무렵이 바로 '대립군' 실패로 힘들었을 때였거든요. 자다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두려울 정도로 심각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요. 방송 출연 1년은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절박했던 저에게 또다른 용기와 기회를 만들어준 시간이었던 것같아요. 영화 '대립군'은 실패했지만 그는 '광해'에 이은 의미있는 사극 영화 제작자로 방송 패널에 낙점됐다.

그는 "절박하니까 길이 열리더라"면서 "가장 힘들 때라고 생각될 때조차도 포기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동시 제작중이었던 '신과함께'는 그에게 가장 고통스런 시기에 탄생된 셈이다.

-각본을 쓰고, 영화에도 직접 출연하는 등 열정이 많은 제작자다.

마지막으로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준비하고 계획 중인 '신과함께' 나머지 프로젝트를 모두 완성해야겠죠. 그리고 아직은 비밀인데 '신과함께'를 뛰어넘는 대서사극 프로젝트도 준비 중입니다.

아마 5년 이후면 이런 계획들은 모두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고요. 그걸 끝마치면 후진양성에 나서는게 저의 최종 꿈입니다.

영화제작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원동연의 표정은 그야말로 확신과 자신감이었다.

그는 단순히 대학강단에 서는 것보다 영화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전문학교(고등학교)를 직접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원동연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83학번으로 대표적인 386세대다.

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 그는 대학 졸업 후 몸담았던 광고회사를 과감히 포기하고 직접 각본(첫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을 쓴다.

이후 17년 뒤 1000만 제작자(2012년 '광해')로 우뚝 섰고 그해 경희언론문화인상 '올해의 신방인상'을 수상했다.

TV 패널은 물론 영화 속 단역으로도 종종 출연하는 그는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달변가다.

포복절도할 반전유머로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기도 한다.

이를 궁금해하는 필자에게 "제가 왕년 개그지망생이었던 건 몰랐죠?"라고 응수한다.

과연 '첫 트리플 천만' 제작자다운 스페셜인터뷰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