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다리를 꼬고 앉지 말고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2004년 3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협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문성근씨의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재판장은 이렇게 주문했다.

한쪽 다리를 꼰 채 방청석에서 해당 재판을 취재하던 기자도 당시 재판장의 준엄한 목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만약 껌이라도 씹고 있었다면 법정모독으로 구속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난생처음 재판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느꼈던 법정의 이미지는 그날 이후 권위주의적으로 남아 있었다.

약 15년 만에 방청석에서 관찰한 법정 분위기는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어 봤으나 재판장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고 법정 경위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변호인의 거듭된 이의제기에 재판장이 대응하는 방식 등 재판 과정에서도 권위주의적 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법정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는 말에 한 현직 부장판사는 "요즘 다리 꼬지 말고 똑바로 앉으라고 말하는 재판장은 거의 없다"고 했다.

사소한 일이지만 법원의 권위주의가 조금씩 사라지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권위주의 배격은 권장할 만한 긍정적 일이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재판과 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요즘 사법부의 권위마저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1심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 판결 직후 집권 여당은 재판장이 양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적폐세력의 보복판결’로 규정했다.

A4지 170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김 지사가 2017년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을 이끈 드루킹 김동원씨와 11차례 만났고 이 가운데 7차례의 만남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인 2016년 11월부터 대선 직후인 2017년 6월까지 집중된 사실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국가기관이 직접 개입한 댓글 조작과 민간인의 자발적 지지자 그룹이 저지른 댓글 순위 조작은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으나 동의하기 어렵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론 왜곡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다.

판결문에는 드루킹 김씨와 함께 활동한 도모 변호사의 오사카·센다이 총영사 추천 과정도 상세히 담겨 있다.

결과적으로 ‘공직 거래’가 무위에 그쳤다고 해서 ‘인사 추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왜냐면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김모 선임행정관이 먼저 김 지사에게 센다이 총영사직 정보를 제공했고 이런 고급 인사 정보는 누구나 동일하게 접근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센다이 총영사직의 경우에는 드루킹 김씨 측이 거절했기에 거래가 성립되지 않은 것일 뿐 김씨 측이 만일 그 제의를 수용했다면 인사 결과는 다를 수 있었다는 게 김모 행정관의 법정 진술이었다.

집권 여당은 1심 판결에 반발하며 사법불신을 조장하기에 앞서 자기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했다.

김민서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