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투(#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과거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거세지면서 검찰과 경찰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예술 분야 성폭력 실태 시범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9.5%가 피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고, 성폭력 피해자나 목격자 중 신고한 비율도 4.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의 성폭력 피해 중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망설이고 있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공개할 수 있게끔 용기를 북돋우고, 피해자 신상을 보호하는 공공 신고창구를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미투 폭로를 더 많이 유도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2차 가해자 처벌 강화 등 다양한 제안들이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중 합리적 의견은 과감히 수용해 충실히 실행할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가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12개 관계부처로 구성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협의회'는 지난 8일 발표한 성폭력 근절대책에서 피해자에 대한 악성 댓글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구속수사 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고, 가해자의 역고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폭로에 대해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않는 쪽으로 법 해석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처벌 대상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경우를 제외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아예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다만 여성계 내에서도 이를 삭제할 경우 피해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가해자가 정확한 근거 없이 방어 차원에서 역고소하는 경우 가중처벌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검찰·경찰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차 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민 의식도 문제여성단체들은 미투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여성폭력 범죄를 담당하는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경찰청 훈령 등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관점에서 여성폭력 범죄 수사 규칙을 제정하고, 여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세한 대응 지침을 담은 실무 매뉴얼을 제작할 것 등을 요구해왔다.

여성가족부도 현재 검찰과 경찰에서 운영하는 피해자 보호 관련 교육과정은 교육대상자가 소수로 한정되어 있고 의무교육도 아니라는 점에서 효과가 높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여성폭력 범죄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강화할 것을 경찰과 검찰에 권고했다.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과 제언이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을 바라보는 뿌리 깊은 왜곡된 의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해진 것은 이를 방지하는 제도가 미흡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왜곡된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2차 가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2차 가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민 의식이 문제"라며 "무심히 쓴 글을 죄책감 없이 올리고, 이에 호응하는 것 자체가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극적으로 성범죄 묘사…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뿐 근본적 인식 개선 부족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미투 고백을 한 지 한달여가 지났다.

이후 시인 고은, 배우 조재현,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사진작가 배병우 교수, 국립극장장 후보에 오른 김석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각계의 유명 인사이자 권위자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사회 다방면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오랜 기간 성범죄에 노출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지만, 자극적인 성범죄의 양태가 화제로 떠오를 뿐 근본적 인식과 제도의 변화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사건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피해자 대부분이 학생•스태프•단원 등 상대적 약자들이라는 점,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닌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묵히며 고통받아왔다는 점,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알려졌어도 아무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말 한마디로 특정인을 업계에서 매장할 수 있는 '갑(甲)'이었다.

이 전 감독의 경우 단원들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졌다는 증언이 속출했다.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故) 조민기씨의 학생들은 조씨가 청주대 예대를 '조민기의 왕국'처럼 생각했다고 전했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업계에서 낙오되거나 조직의 배신자로 몰릴 것을 감당해야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개인의 용기에서 시작된 미투 캠페인을 조직 문화의 변화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투 폭로로 드러난 성범죄 상당수 '여론재판'으로 그칠 가능성 높아미투 폭로로 드러난 성범죄 중 상당수는 '여론재판'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처벌까지 가려면 친고죄와 공소시효의 벽을 넘어야 한다.

경찰은 일단 미성년자가 대상이거나 피해자의 진술이 확보된 건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6월 이후에 벌어진 사건은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다.

그 전에 발생한 피해 사건은 고소 기간(6개월)이 지나면 고소가 불가능해 사실상 법적 처벌이 어렵다.

한 법률 전문가는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뚜렷한 물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고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피해자의 진술 자체가 성범죄에서 중요한 증거로 인정된다"며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서 신빙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미투 운동의 긍정적인 방향 속에서도 이제는 제도적인 구제로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