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시절 취재기자로 경제부처를 출입했다.

장관은 S대 교수 출신으로, 대선 후보시절부터 경제에 대해 자문을 해준 멘토였다.

그는 교수였을 때에는 경제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지만 장관이 되고 나선 말을 아꼈다.

정책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 늘 “검토하겠다”고 답해 ‘검토장관’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가 신중모드로 바뀐 것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따라 기업이나 가게 등 경제주체에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교수의 말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고 책임도 크지 않지만 장관의 말은 정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무게감이 다르다.

이보다 앞선 노태우 정부 시절 사회부처를 출입할 때에는 언론인 출신 장관을 만났다.

이 장관은 대부분의 실무는 실, 국장들에게 맡기고 거기에 따른 책임도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

대신 까다롭고 민감한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테니 고민하지 말고 갖고 오라고 했다.

담당부처 공무원들은 아주 좋아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잘해야 본전인 정책도 아래 사람에게 미루지 않고 교통정리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실장들에게 업무를 대폭 위임해 시간 여유도 많았다.

그래서 장관실에 들르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반면 앞에 말한 경제부처 장관은 항상 바빴다.

기업이나 관련 기관 등 외부행사가 많은 데다 장관 부속실에는 밀린 결제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래서 장관이 행사를 마치고 과천 청사로 들어오면 결제를 받거나 진행사항을 보고하기 위해 들른 직원들이 장사진을 쳤다.

최근 TV 저녁뉴스에서 교육부가 발표하는 2022학년도 대학 입시 제도 개편안을 시청했다.

수시와 정시 비율 조정, 수시와 정시 선발시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평가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 하나같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겐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고 여러 가지 방안을 국가교육회의에 넘기겠다고 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었다.

교육행정의 주체이자 정책집행기구인 교육부가 자문기구에 결정을 떠넘긴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신문을 보니 예상대로 대부분 비판일색이었다.

‘대입 개편안 국민에게 또 미뤘다’, ‘던져놓고 빠진 교육부’ 등. 교육부는 중요한 입시정책을 한 번 더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현재 중3을 대상으로 한 새 입시정책은 지난해 수능 절대평가 도입방침이 논란이 된 이후 근 1년 가까이 논의돼 온 것이라 한다.

그 정도면 결코 부족한 시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 국가교육회의가 복잡한 입시정책을 쾌도난마처럼 정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교육회의에 소속된 인사들의 면모를 보니 대표성은 있지만 개별 사안에 대한 전문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정책, 특히 입시정책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어렵다.

워낙 많은 게 얽히고 섥혀 있기 때문이다.

학생 선발을 공정하게 해야 하지만 대학은 조금이라도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려 한다.

입시위주의 수업방식은 학교 교육 정상화와 충돌을 빚고 도농간의 교육격차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잘 수렴해서 학생, 학부모, 고교, 대학 등 모두를 충족시키는 입시정책을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동안 입시정책을 여러 번 수정해온 것이 이를 말해준다.

공론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여론을 수렴하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시간이 걸리고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결정을 미루고 마찰이 심화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입시정책처럼 선택지가 많은 사안은 더욱 그렇다.

복잡한 것을 가지 쳐 단순화하고 경중을 가려 최선의 공약수를 찾아내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지 공론을 앞세워 국가교육회의에 숨을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지방 공무원들은 정책을 잘 결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위원회를 만들고 거기서 결정하면 그대로 따른다.

욕 먹기 싫고 책임지기 싫어서다.

위원회를 앞세운 방패행정이 이젠 중앙정부로 옮아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