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당시 노태우 정권의 부당한 압력이 검찰총장의 지시로 전달돼 초동수사의 방향이 정해지면서 무고한 사람을 유서대필범으로 조작했다고 결론냈다.

위원회는 21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조사결과를 보고받아 심의한 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또 현재 검찰총장이 피해자인 강기훈씨에게 직접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과 단정적 주장을 언론에 발표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한 잘못된 관행에 대한 개선도 권고했다.

위원회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주요한 원인으로 재심개시가 결정된 사건의 경우 그에 대해 기계적으로 불복하고 과거의 공방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재심절차에 임하는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또 재심절차에 관한 검찰권 행사의 준칙을 재정립하고, 현재 운영 중인 '상고심사위원회'에서 과거사 재심개시 결정이나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불복 여부를 심의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이 강씨를 1991년 5월8일 서강대학교 본관 옥상에서 분신자살한 고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방조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해 유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위원회는 이 사건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검찰권 남용과 오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과 재심 무죄 판결 이후에도 검찰권 행사와 관련해 문제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조사 대상사건으로 선정했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강씨를 비롯해 당시 수사팀 검사 3명, 검ㅊ총장,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진술을 청취하고 수사 및 재판기록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진상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당시 수사팀이 강씨가 등장하기 전부터 몇 사람을 유서대필 후보자로 정하고 필적자료 등을 조사하고 있었으나, 마땅한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강씨의 자필자술서가 등장하자 즉각 용의자로 지목된 사정을 확인했다.

수사과정에서도 김씨의 정자체 필적자료 외에 유서와 비슷한 흘림체 필적 자료를 확보하고도 이를 은폐하고 필적감정을 의뢰하지 않았으며, '유서는 제3자가 대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유서 필적과 동일한 제3자의 필적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필적감정 절차를 진행했다고 봤다.

수사검사는 1991년 5월 10일 김씨의 하숙방 압수수색을 통해 흘림체 글씨가 적힌 팸플릿 및 유서에 쓰인 구절이 들어있는 소설책을 압수수색했음에도 아무런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수사보고를 했으며,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조사단은 필적 감정의뢰 과정에서 검찰이 특정 감정결과를 유도했다는 의혹과 함께 강씨가 필적자료를 조작했다는 검찰 측 주장의 근거가 되는 전민련 업무일지 및 전민련 수첩에 대한 국과수 감정의 문제점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결과 검찰이 강씨의 인적사항이 적힌 페이지를 제외하고 국과수에 보냈으며, 국과수의 감정 완료 전에 검찰의 단정적 판단을 언론에 공표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감정결과를 유도했다고 봤다.

전민련 업무일지와 전민련 수첩에 대한 절취선 감정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사단은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및 참고인에 대해 접견교통권과 진술거부권 침해, 밤샘조사, 폭행과 폭언, 가족과 지인에 대한 위해 고지 등 인권침해와 위법수사가 행해졌다고 결론 내렸다.

강씨는 구속된 뒤 변호인 접견과 조사입회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하고, 기소 전까지 가족면회도 차단됐다.

수사팀은 강씨에 대해 이틀씩 잠을 재우지 않거나 모욕과 손찌검을 하고, 가족과 여자친구에 대한 구속을 거론했다.

또 수사 초기부터 매일 수사상황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며, 강씨가 반발했음에도 추가 보강 수사 없이 피의사실과 관련된 사항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발표했다.

검찰은 서울고법의 재심개시결정에 대한 재항고 절차에서도 공공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검찰 측에 불리한 중요한 증거자료에 대해 음모론의 시각에서 증거능력을 탄핵했다.

기존의 잘못된 유죄판결을 근거를 만연히 부연 반복하고 김씨의 유가족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주장을 확인했다.

위원회는 이 같은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정권이 수사방향을 지시했으며, 수사 과정에서 검사는 자살방조의 범죄사실 입증에 불리한 증거는 은폐하고 유리한 증거만 선별해 감정을 의뢰하는 등 객관의무를 위반했다고 했다.

또 감정과정에서도 전민련 수첩 실물을 직접 조사함으로써 수첩 절취선에 대한 국과수 감정이 부실했음을 확인했고 검찰에서 김씨의 수첩이 조작된 것이라고 본 것이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수사중 가혹행위와 피의사실 공표가 이뤄졌으며, 재심과정에서 공권력이 남용되던 시절의 수사 관행을 두둔하고 강씨를 유서대필자로 매도하던 과거의 입장을 반복했다고 했다.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